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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비' 지방시, "휴 헤프너와 같이 시대의 뒤안길로...시대를 풍미한 영원한 젊은이" 영원한 열정의 아이콘

기사승인 2018.03.13  18: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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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휴 헤프너/온라인 커뮤니티)

위베르 드 지방시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있다.

13일 지방시의 타계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지방시와 더불어 시대를 풍미한 열정의 아이콘 휴 헤프너가 재조명된 것.

휴 헤프너는 지난 2017년 9월 27일 지방시와 마찬가지로 아흔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세간의 이목을 한 데 모은 바 있다.

휴 헤프너는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다.

휴 헤프너는 네브래스카 출신의 청교도인 회계사 아버지와 선생님 어머니를 아해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 헤프너는 전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인생을 보낸 인물로 세계적인 풍운아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2013년 에스콰이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휴 헤프너는 "살면서 결혼은 여러 번 했지만, 결혼한 상태에서 바람핀 적은 없다"고 밝혀 반전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생전 젊은 여성들에 둘러싸인 모습, 죽어서도 매럴린 먼로 묘지 옆에 안장될 그를 호색한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의 의외의 면모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헤프너는 누구보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여성운동을 지지한 사람이다. 여성이 남성에 종속적이던 그 시절, 그는 일찍이 남녀가 동등하게 섹스를 즐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플레이보이 창간 50주년 행사에서 사후에 새겨질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쓴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헤프너는 "성에 대한 우리의 유해하고 위선적인 생각을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고, 또 그렇게 하는 동안에 많은 재미를 본 인물로 기억하기 바란다(I'd like to be remembered as someone who played some part in changing our hurtful and hypocritical views on sex and had a lot of fun doing it)"고 작성해 세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편 누리꾼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지방시가 영면에 들기를 바란다는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는 KNS뉴스통신 고유 콘텐츠입니다. 제휴 계약 없이 본지 기사를 상습 도용 중인 일부 언론사의 경우, 재차 도용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사전 고지하는 바입니다.

 

서미영 기자 ent2@kns.tv

<저작권자 © KNS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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