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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춘림 능말지역문화포럼 대표 “마을이 모여서 국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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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춘림 능말지역문화포럼 대표 “마을이 모여서 국가가 된다”
  • 윤준식 기자
  • 승인 2016.02.03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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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경쟁력이다(1)] 지역의 옛 모습을 스토리텔링하다 ‘우리동네 능말’

▲ 능말지역문화포럼 박춘림 대표. 마을기록잡지 ‘우리동네 능말’ 사무실인 성북구 정릉의 조그만 옥탑방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작은 옥탑방에 옹기종기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마을잡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인터뷰 또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즐겁고 정겨운 시간이었다. <사진=KNS뉴스통신 윤준식 기자>
[KNS뉴스통신=윤준식 기자] 지역콘텐츠가 지역 경쟁력이다. 단적인 예가 한류드라마 열풍일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사연이 담긴 장소, 매력적인 행동들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를 만들고 때 아닌 치맥 열풍을 불어 일으키기도 한다.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힘은 관광산업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지역민에게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져오게 해 지역공동체를 살리고 새롭게 한다. 연재 첫 회로 서울 성북구 정릉에서 마을기록잡지 ‘우리동네 능말’을 창간한 능말지역문화포럼 박춘림 대표와의 대담을 전한다.

◈ ‘우리동네 능말’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우리동네 능말’을 시작하게 된 것은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서다. ‘건축학개론’의 첫 배경으로 정릉이 나오는데 50~60년 전 정릉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한 생각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 생각보다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시작했는가?

☞ 일단 정릉의 옛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뜻이 맞는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어르신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의 옛 일들을 여쭤보고 오래된 사진들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50년 전에는 청수장 유원지가 정릉을 먹여살리다시피 했다고 한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분들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을 보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청수장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우리동네 능말’에 게재된 50년 전 청수장의 모습 <사진=KNS뉴스통신 윤준식 기자>

이런 사진들을 모아 정릉우체국 앞 교통광장(편집자 주: 이 마을 사람들은 우체국 앞 조그만 공간을 교통광장이라 부른다)에서 사진전시회를 했다. 공간이 좁아서 빨래줄을 쳐 거기에 사진을 걸기도 하고 나무에 걸어놓기도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보고 정말 좋아했다. 이런 좋아하는 모습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을잡지를 기획하게 되었다.

◈ 잡지제작을 하려면 제작을 위한 재원확보가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해결했나?

☞ 잡지를 제작해서 배포한다는 것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쉽지 않았는데, 마침 마을만들기 사업 공모가 났다. 사업취지와 기획의도가 좋게 보여는지 공모사업에 당선되며 마을잡지를 본격화할 수 있었다.

◈ 가장 인상적었거나 감명깊은 순간이 있다면?

☞ 마을잡지 1호를 내고 나서 17살 때 서울에 올라와 버스운전기사로 살았다는 어르신을 만나게 되었다. 연세가 팔순이 넘으신 분이었는데 70여년을 운전으로 살아온 분이셨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삶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자체를 너무 고마워 하셨다. 어르신 말씀 중에 70년대의 1번 버스 종점이 바로 이곳 정릉이었다고 하신 것이 인상적이어서 잡지 2호를 내면서 재미있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70년대의 버스 모형을 수소문해 영화제작사 세트장에 있는 것을 임대했다. 서울광장에 그 버스를 놓고 버스 안내양 복장을 한 뒤 “오라이~!” 등 재미있는 재현행사를 하는 동시에 버스 안에서 정릉마을 사진전을 진행했다. 그랬더니 서울광장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들 모두 즐거워했고 정릉에 대한 관심도 굉장히 높아졌다. 그렇게 현실화된 스토리텔링의 과정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 마을잡지 이름이 ‘우리동네 능말’인데 ‘능말’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이게 되었나?

☞ 정릉에 이사온 게 2003년이었다. 그 전에는 경기도 고양시에 살았는데 원래 동네의 역사와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았다. 고양시에 살 때도 애 업고 왔다갔다 하면서 동네 사진을 찍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정리해 행정기관에 민원접수를 하기도 했다. 그 버릇이 어디 안가고 정릉에 와서도 발동한 것이다. 정릉에 이사오자 마자 인터넷으로 정릉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그랬더니 60년 전에는 이 동네를 ‘능말’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나오더라. 나중에는 ‘능말’이란 이름으로 동네에 정자를 하나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능말’을 마을 잡지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 마을만들기 차원에서 이런 문화활동이 갖는 의의가 있다면 무엇일까?

☞ 첫째로 역사인식에 대한 것이다.동네의 역사와 문화 이런 부분에 관심이 많고 이런 기록들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통해 현재의 역사와 문화가 왜곡되고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야 한다.
둘째로 마을만들기가 인디문화 또는 서브컬쳐문화로 정착한 후 경제와도 연결되야 한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합류하여 정릉 뿐 아니라 정릉이 속한 성북구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얼마든지 활성화시킬 수 있고 이게 영화, 드라마와 같은 것과 접목되면 한류 문화관광 콘텐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에 자리잡은 문화예술인들의 생업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마을이 모여서 국가가 된다!” 마을 활동가로서 느꼈던 소박한 생각들이 국가발전에 대한 거대한 비전이 되고 있다. <사진=KNS뉴스통신 윤준식 기자>

◈ 광주 5.18관련한 잡지도 창간하셨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다면?

☞ ‘그날’이라는 반년간지를 만들었다. 12년 동안 518민주광장에서 ‘천상의 열사에게 천 송이 국화꽃을’이란 타이틀로 국화꽃 천 송이와 생수를 나눠드리는 행사를 도왔다. 그 과정 속에서 일반 참배객들이 먼 곳에서부터 14박15일을 걸어서 순례형식으로 찾아오시는 것을 보고 너무 감사했고 감동했다. 아무 대가도 없는데 민주열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오시는데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는게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방식으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마음에 담고있던 이야기들을 잡지 ‘그날’에 담았다.

◈ ‘그날’과 관련한 인상적인 일, 앞으로의 계획도 소개 바란다.

☞ ‘그날’ 창간호에서 518민주화 항쟁 당시 공수부대 장교로 참여했던 분을 인터뷰했다. 이제는 가해자들도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도 트라우마가 없는 게 아니다. 이제 서로를 인정하고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다뤘다. 그런데 이분들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복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졌다. 노인복지 달라야 하고 청년복지, 모자가정 복지 달라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의 복지를 싣자는 취지에서 ‘그날’ 2호가 기획되었다.

◈ 끝으로 마을만들기 관련한 의견이 있다면 한 말씀

☞ “마을이 모여서 국가가 된다!” 좀 크게 놀아야 하는데(웃음) 마을활동가다보니까 마을이 잘 살아야 국가가 잘 사는거 아닌가 생각한다. 요즘 마을활동이 변질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조직화되고 정당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당을 끼지 않고서는 마을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아지는 점도 있어 염려가 된다. 이번 총선 이후에는 변화되었으면 한다.

윤준식 기자 newsnz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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