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 채우석 고양시의원이 백주대낮에 면허정지 수준의 낮술을 먹고 음주사고를 낸 사건에 대해 동료들이 조언을 구하기에 이런 말씀을 해드렸다.
“우린 검투노예입니다. 세상에는 부조리와 모순이 너무 많아서 늘 그것과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인인 국민들이 일상에 쫓겨 직접 싸우기가 힘들기에, 조금씩 돈을 걷어 우리 검투노예를 사서 대신 싸움을 시키는 것입니다. 잘 싸우라고 돈 주고 사왔는데 상대 검투노예와 정(情)이 좀 들었다고 짬짜미해서 그 불의를 덮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걸 우리 주인들이 용납해주시겠습니까? 상대편이 아니라 우리 같은 편 내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그 불의를 혹독히 단죄하는 게 우리 같은 사람들의 도리이자 숙명입니다.”
검투노예는 결국 검투장에서 죽을 운명이다. 지금 힘 좀 더 가졌다고, 지금 좀 잘 나간다고 그 검투노예가 영원히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대한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長江後浪推前浪) 언젠가는 혜성과 같이 나타난 겁 없는 신예(新銳)가 기한이 다한 현재의 강자를 꺼꾸러뜨리고 무대의 새 주인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이고 피할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젊다고 모두 겁 없이 싸울 줄 아는 것일까?
‘겁 없는 신예(新銳)’란 말이 젊은 정치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일까? 나이만 젊었지 생각과 행동은 낡고 병들고 기회주의적인 ‘젊은 꼰대’ ‘청년 기득권’ 이 나라 정치판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젊은 꼰대’들이 자주 내뱉는 말이 “나중에 우리가 힘이 생기면 이렇게 저렇게 하자. 그 때까진 일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그런 무늬만 젊은 친구들의 변명과 자기합리화를 들을 때마다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말은, ‘때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군대에서 배운 말 중에 ‘훈련한 대로 싸우고 싸우는 대로 훈련한다’는 말이 있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뿐이다.
평소에는 모두가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지만 막상 ‘정의’와 ‘공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하는 순간에는 소수만 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직 민심(民心)과 시대정신, 양심과 소신을 따르며 주어진 상황과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가는 그런 검투노예의 삶에 충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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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원 자유한국당 고양시(정) 당협위원장 hskimi@naver.com